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바스 왕조 (문단 편집) == 평가 == 아바스 왕조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하룬 알 라시드]], [[알 마문]] 등 초기의 [[칼리파]]들은 관용을 중심으로 비무슬림들을 포용하는 정책들을 실시했고, 이는 비 무슬림이나 비 아랍인 정도가 아니라 쿠라이시 가문 위주의 족벌주의로 나가다가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고꾸라진 [[우마이야 왕조]]에 비하면 상당한 발전이었다. 아바스 왕조의 강역 확장에 힘입어 이슬람교는 본격적으로 [[북아프리카]], [[페르시아]], [[인도]], [[아라비아]] 지방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고 이는 아바스 왕조 멸망 이후에도 이슬람이 확고부동한 중동의 제1종교로 남아있을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 평등을 기치로 내걸고 성립된 국가인 만큼 민족과 종교에 상관없이 능력이 있다면 관직에 공평히 등용되고 대우받았다. 특히 종교에 대해 굉장히 이성적이고 관대하여 제국의 백성들은 종교에서 차별을 받지 않으며 자유로이 신앙생활을 했고, 심지어 '''[[이슬람]]을 배교한채 대놓고 [[이신론]]이나 [[불가지론]]을 선언해도 의견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었다.'''[* 이 당시 활동했던 유명한 이슬람 비판가로는 아부 이싸 알 와라끄, 이븐 라완디를 꼽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이신론자 겸 불가지론자 시인이었던 [[https://en.wikipedia.org/wiki/Al-Ma%27arri|아불 알라 알 마알리]]가 알려져 있다.][* 아바스 칼리파조의 영역내에서 마니교도들은 무슬림들을 상대로 선교하는 일이 많았고, 적지 않은 학자들이 마니교 신도들이었다. 후대에는 아바스 왕조 내 마니교도(이른바 [[https://en.wikipedia.org/wiki/Zandaqa|잔다까]])들이 무신론자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이슬람 황금기 시대 학자 중 무신론자로 알려진 사람 중 진짜 무신론자인 것이 확실한 사람은 [[https://en.wikipedia.org/wiki/Ibn_al-Rawandi|이븐 알 라완디]] 정도밖에 없고, 나머지 상당수는 다른 학자들에게 비방당하는 과정에서 [[악마의 편집]]을 당해 무신론자로 잘못 알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거의 유일하게 확정된 사례인 이븐 알 라완디의 경우도 80세가 넘어 죽기 직전에 자신이 무신론자인 것을 밝혔다.]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 경전은 아랍인들에게 선교할 목적으로 아랍어로 번역되었으며, 바그다드 성벽 안에는 성모 마리아 수도원을 포함한 여러 로마 가톨릭 성당과 수도원들이 번창했다. 제국 내의 이슬람과 타 종교는 서로 비난하거나 치열한 논변으로 싸울지언정 사적 제재로 살해당하거나 법에 의해 처벌받을 우려가 없었던 시기였다. 현대의 이슬람 국가들과 신자들이 타 종교와 이슬람 비판가, 무신론자들을 대상으로 악명높은 탄압과 공적, 사적 제재, 증오 범죄를 일삼는 것이 흔한 것을 감안하면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문화적으로 융성하게 되고 수많은 무슬림 인재들이 배출되면서 교리가 대대적으로 정비되어 [[이슬람]]이 아랍 민족종교에서 벗어나 세계종교로 발돋움을 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전의 이슬람 교리는 '그냥 알라께서 그렇다고 하시니 믿으면 됨'의 성격이 강했지만, 학자들은 각종 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이슬람 교리에 대한 근거를 만들었다. 아바스 왕조 이후에도 수많은 《타프씨르》[* 《꾸란》의 주석서를 말한다.]가 만들어져 왔지만 아바스 왕조 때만큼 다양한 시각에서 이슬람에 접근하려 한 《타프씨르》를 찾아볼 수 없으며, 실제로 현대의 이슬람 개혁가들의 주장도 아바스 왕조 때의 문헌에 기초한다. 하지만 이 시대를 너무 이상화하는 것도 곤란하다. 당시 그리스어를 아랍어로 번역하는 작업에서 희곡들이 번역되지 못한 것은 그럴 수 있다 쳐도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크세노폰]]의 역사서들은 번역되지 못했다. 그리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내용을 담은 헤로도토스의 책은 당시 아바스 칼리파조의 실세였던 페르시아인들의 감정을 건드린 듯 하고, 투키디데스의 저작은 아테네 정치인들이 대중들 앞에서 연설한 내용이 상당히 많이 포함된 것은 물론[* 칼리파를 비롯한 아랍인 지식인들은 대중들 앞에서 [[금요일]] 예배를 집전하면서 설교 형식으로 연설을 했는데(아랍어로 이를 '쿠트바'라고 한다.) 투키디데스의 《역사》에 기록된 연설들과 금요일 예배를 전후하여 행해지는 설교는 엄연히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서 투키디데스의 책에 묘사된 연설 방식은 당시 그리스도인인 번역가들이나 무슬림 독자들 입장에서는 다소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고대 민주주의 국가 아테네 시민이던 투키디데스의 관점에서 참주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내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당시 황실의 후원을 받는 번역가들이 건드리기 적합한 책이 아니었다. 같은 맥락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바스 칼리파조 학자들에게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작 중에서도 《정치학》(Politika)은 번역되지 못했다. 본래 고대 아랍인들은 [[https://en.wikipedia.org/wiki/Shura|슈라]]에 바탕을 둔 원시적인 형태의 민주주의 및 평등주의가 강했지만 우미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 시대가 되면서 칼리파들은 페르시아와 동로마의 황제들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다만 완고한 보수 성향의 아랍인들은 이러한 칼리파들의 행동을 두고 "왜 당신들은 아랍의 전통을 버리고 이교도인 페르시아나 로마인들을 흉내내는가?"라고 불만을 품었다.] 당시 수도였던 [[바그다드]]를 그대로 물려받은 아바스 왕조의 장녀 [[이라크]]의 경우 아바스 왕조에 대한 평가가 당연히 좋은 축에 속한다. 한때나마 바그다드가 인구 200만에 달하는 세계 최고의 도시였다는 데에 대하여 자부심이 굉장하고, [[사담 후세인]]이 아랍 제국을 세우려 했던 야심 역시 한때 이라크가 아바스 왕조 아래에서 아랍 세계의 중심지였던 것과도 무관하다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아무래도 [[이라크인]]들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역사 최고 자랑거리는 아바스 왕조가 아니라 세계 최초의 문명으로 손꼽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보니, 약간 [[콩라인]]처럼 이라크인들의 선호도와 인식 쪽에서 뒤로 밀리는 감은 있다. 그 사담 후세인조차도 [[신바빌로니아]] 제국과 메소포타미아 시대에 빠져서 '함무라비 사단'을 창설했지만 아바스 왕조에서 이름을 따온건 없다. 그래도 이라크인들이 생각하는 역사상 최고의 지도자들 중에 [[네부카드네자르 2세]], [[함무라비]]와 함께 [[하룬 알 라시드]]가 꼽힐 정도로 아바스 왕조에 대한 인식이 괜찮은 건 맞다. 하지만 [[페르시아]], 즉 [[이란]]의 입장은 썩 좋지않다. 일단 아바스 왕조는 페르시아인들이 중용되었던 왕조였지만, 아바스 왕조는 결정적으로 [[수니파]]고 현 이란은 [[시아파]] 국가다보니 평가가 좋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아바스 왕조는 건국 이후 최대 공신이자 페르시아인이었던 [[아부 무슬림]]을 숙청했고, [[시아파]]의 [[이맘]]을 독살해 죽여버리거나 체계적으로 시아파 무슬림들을 탄압한 전적도 있다보니 아바스 왕조에 대한 입장이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아부 무슬림 사후 극렬히 반발한 페르시아인들은 [[호람딘]]을 창설해 아바스 왕조의 골머리를 썩혔고 페르시아와 아바스 왕조의 관계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란-이라크 관계]]만 읽어봐도 알겠지만 현대 이란과 이라크는 하루 종일 으르렁거리는 사이인데, 아무래도 아바스 왕조의 중심이 이라크였고 그 중심지였던 [[바그다드]]와 [[사마라]] 등의 대도시들마저도 죄다 이라크에 있다보니 이란으로서는 아바스 왕조에 대한 인식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서구권에서는 아바스 왕조에 대해 인식이 나쁠만한 이유가 없다. [[우마이야 제국]]이나 [[오스만 제국]]처럼 유럽을 직접 침공한 것도 아니고, 현대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처럼 종교에 미쳐 날뛰었던 것도 아니니 오히려 바람직한 무슬림들의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게다가 [[천일야화]]의 시대적 배경이라는 메리트 덕분에 [[오리엔탈리즘]]의 주요대상으로 살짝 미화되는 감도 없지않아 있다. 특히 실전될 뻔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산들을 잘 보존하고, 훗날 르네상스가 일어나는 근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집트]], [[레바논]] 등 다른 중동권도 마찬가지다. 아바스 왕조의 시대는 이슬람이 역사상 가장 잘나갔을 시대였고, 특히 북아프리카의 패자 [[맘루크 왕조|이집트]]는 아예 아바스 칼리파들을 [[카이로]]에 납치해서 부려먹기까지 했으니 딱히 아바스 왕조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만한 건덕지가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